이제 다시 나아가자
아침이 되면 저녁이 오고, 꽃이 피면 지고, 봄에 잎이 돋아나면 가을에는 떨어집니다.

밤이 물러나고 아침이 오고 열차는 역사를 빠져나가면서 가속을 냅니다.
쉬지 않고 거침없이 내달려 다음 역을 향합니다.

봄비가 내렸습니다.
나뭇잎은 점점 더 짙은 푸른색으로 바뀌어 갑니다.
세상을 하얗게 채웠던 하얀 잎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이렇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태어나면 죽는 것은 불변의 이치입니다. 빛나는 한 때는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태어나 세상에 부딪쳐 희로애락을 겪는 동안 시간은 흘러 흘러 삶의 종착역에 이릅니다.
지나온 삶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남은 삶이 귀해질 때가 옵니다.

세상이 얼마나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던지 우리는 생의 한계를 망각합니다.
영원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수천 년 살 것처럼..
그러나 그 자리에 늘 있는 듯한 강물은 사실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없습니다.

쉼 없이 나아갑니다.
그러다가 가끔 눈앞에 갑자기 들이닥친 혹은 반복되어 예측 가능해진 난관은 일시적으로 멈춤을 만듭니다.

대들면 위험합니다.
많은 실행 착오와 학습을 통해 유전으로 각인된 프로그램과 사회적 교육 그리고 개인적 경험들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합니다.
멈춤은 숨을 돌릴 때입니다.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보고 다음 출발을 위한 에너지의 축적의 시기입니다.

숨을 고르고 이제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렇다고 강물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좀 더 돌아가야 합니다.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학습과 경험이 머릿속에 계속 저장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어떤 기분일까요..
강물도, 다리도, 자동차도, 하늘도..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면..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 혼자 놓인 것입니다.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공포 그 자체입니다.

힘겨웠습니다.
기억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시간은 더욱 현상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에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결국 그 시간이 되었고 언제가 될지 모르던 예정된 시계는 땡땡땡 종을 울렸습니다.
아픔의 시간이었고 추억의 시간이었고 반성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음을. 세상에서 가족이 가장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202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