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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종묘 관람(ft. 문화 해설사 설명)

육두만(하루에 육을 두 번 만나자) 2025. 2. 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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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눈발이 날리는 날입니다.
하얀 눈이 내려앉은 종묘 입구의 넓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참새떼가 짹짹 거리며 무리 지어 날아다니다 나뭇가지에 앉았다를 반복합니다.
숲으로 이루어진 도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종묘로 들어갑니다.

세계문화유산 종묘 입구를 들어가면 돌길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3개의 돌길이 나란한데 가운데는 혼이 가는 신로, 동쪽은 왕이 걷는 어로, 서쪽은 세자가 걷는 세자로 입니다.
안내판에는 신로의 이동을 금지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먼저 재궁을 방문합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왕과 세자가 머무는 장소입니다.
왕과 세자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정관 동쪽문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바로 옆 역대 국왕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정관으로 향합니다.
남쪽의 홍살문으로 들어갑니다.
붉은 화살 문으로 혼령이 통과하는 문이라고 문화해설사님이 설명해 주십니다.
정관은 19칸으로 길이 101m의 우리나라 최장길이 목조건축물입니다.
아쉽게도 올해 3월까지 공사 중이라서 일부 가림막이 세워져 있고 월대는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신위는 공사의 소음 때문에 창경궁으로 임시로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정관은 처음엔 태조가 승하하고 윗대 4대조 선왕(태조에 의해 선친들이 왕으로 승격)을 모시는 총 5개의 칸으로 시작되었다가 조선왕조가 진행됨에 따라 계속 동쪽으로 확장되어 19개 칸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에 태조의 4대 선왕 신위를 영녕전으로 모시면서 맨 좌측인 서쪽부터 태조의 순서부터 모셔졌습니다.


정관은 주로 공덕이 큰 왕이 모셔졌고 그 외의 분들은 영녕전으로 모셔졌다고 합니다.
역대왕 중 연산군과 광해군은 종묘에 모셔지지 않았습니다.

홍살문 옆쪽에는 공신당도 있습니다.
임금 1분당 7명 정도로 총 83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황, 한명회 등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분들이 많은데 이순신 장군은 없다고 합니다.
당시의 판단 기준에 의한 결과라고 합니다.


정전을 떠나 정전과 재궁 사잇길로 가면(동쪽 문) 진사청 일원은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곳과 종묘를 지키는 사람들의 숙소가 있습니다.
제사음식은 모두 남자가 담당합니다. (숙수)
해설사님이 해주신 이야기로는 여자는 왕의 부인이 될 때(책봉) 한번 방문한다고 합니다.

진사청을 보고 종묘 둘레길을 걸어갑니다.
숲 속의 조용한 산책길입니다.
중간에 창경궁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둘레길을 돌면 정전옆에 위치한 영녕전을 만납니다.

악사나 신하가 드나드는 한 칸짜리 서쪽문으로 들어갑니다.(왕이 이동하는 문은 동쪽문으로 3칸 )
영녕전의 특징은 중앙에 높은 기와가 있고 양 옆으로 낮은 기와로 되어있습니다.
높은 기와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태조의 선대 4 왕의 신위를 모신 4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증축해 나갔던 정전에 비해 영녕전은 중앙에서 양쪽 동서방향으로 증축했다고 합니다.(16칸)
영녕전에 모신 분들은 정전을 거쳐 모셔지는데 유일하게 단종만이 시기의 문제로 바로 영녕전에 모셔졌습니다.
정전과 영녕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8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한국전쟁 때도 무사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먼저 종묘를 한 바퀴 둘러보고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그 의미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종묘제례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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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의 설명을 마치고 영녕전을 떠나 입구 우측에 위치한 향대청으로 들어가면 전시관을 꾸며 놓았습니다.(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됩니다)
종묘제례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나오고 레고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종묘 신주가 모셔져 있는 것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조선왕조 국왕들이 모셔져 있는 종묘의 의미와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202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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